취미/내맘대로 책 감상평

SF로 푹 끓인 사골국..사골국 그만 먹고 싶어요

호빵찡 2023. 2. 6. 17:12

제목 : 매트리스로 철학하기

저자 : 슬라보예 지젝

옮긴이 : 이운경

출판사 : 한문화

 

읽은 기간 : 2023.01.31 - 2023.02.05

 


한 명의 저자가 쭉 써 내려간 책인 줄 알았는데 여러 명의 교수가 하나의 주제로 쓴 글을 엮은 책이었다. 주제를 조금 세분화해서 장을 나눠뒀는데 전체적으로 말하는 바는 비슷했다.

존재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맞다. SF의 사골 주제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통 속의 뇌, 플라톤의 동굴..이제는 오히려 이런 철학적 고찰이 빠진 SF가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주 많은 SF에서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듄에서 엄청난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스토리만 봤을 때는 정말 플랫하고 어느 정도는 강대국 입장의 식민사관이 느껴졌지만.. 심지어 책은 친구 말을 빌려오자면 투명드래곤 느낌이었지만 이런 고찰들을 배제하고 압도적인 비주얼과 매력 있는 캐릭터로 밀어붙인 점이 좋았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토탈리콜, AI, 아이로봇, 아일랜드 등등..

 

SF를 정말 좋아하기도 하고 서문의 문장이 인상적이어서 보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책의 구성상 비슷한 내용을 계속 다른 사람의 글로 반복해서 보다보니 뒤로 갈수록 책장이 안 넘어갔다. 책의 내용이 A → B → C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되어야 뒤의 내용이 궁금할 텐데 A → A’ → A’’ → A’’’ 이런 느낌.. 번역가는 한 명이어서 내용이 좀 더 일관적으로 느껴졌나 싶기도 했다. 근데 생각해 보면 과학 + 철학 이런 종류의 책들은 페이지가 다들 잘 넘어가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원문으로 읽으면 조금 느낌이 다르려나? 하지만 원문으로 찾아 읽어볼 만큼 흥미가 느껴지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흥미 있는 책은 다른 언어로도 보는걸 좋아한다. 그래봐야 아직은 영어밖에 읽을 줄 모르면서 왜 원서라 하지 않고 다른 언어로 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냐고? ‘나는 전설이다’ 같은 경우 영화와 원서의 느낌이 다르다고 해서 원서를 샀지만, ‘채식주의자’ 같은 경우에는 원서가 한글로 되어있는데 해외에서 수상을 해서 영어로 읽었을 때도 한글로 읽을 때와 동일한 뉘앙스로 읽힐지 궁금해서 구매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고, 요새 스페인어를 아주 조금씩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 스페인어로 된 글도 읽게 되고 싶긴 하다. 아마 지금 공부 속도로는 동화책 정도만 읽어도 아주 대단할 거 같지만.. 또 모르는 거지.

 

 

다시 매트리스로 철학하기로 돌아와서, 존재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 철학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감각과 쾌락에 매몰되지 않고 이데아를 추구하는 것이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사실 와닿는 말은 아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매트리스의 네오처럼 파란 약과 빨간약 중 빨간약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현실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사이퍼처럼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매트리스 영화를 본 적이 없거나 아니면 까먹은 사람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영화에서 인류는 기계들에 의해 잠든 채로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 가상의 세계 안에서 네오는 이상함을 느끼게 되고 그런 그에게 나타난 사람이 내민 것이 파란 약과 빨간약이다. 파란 약을 먹는다면 이상함을 잊고 그대로 일상을 살게 될 것이고 빨간약을 먹으면 진실을 알게 되는데 네오는 영화 내용 진행상 물론 빨간약을 선택한다. 사이퍼는 반대로 진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고통스러운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 다시 기억을 잃고 매트리스로 돌아가려 한다.

 

사실 머리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해도 와닿지는 않는다. 이데아를 추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존재의 본질인 고통과 마주해야 하는데 그 고통에 비해 진실을 외면하는 삶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데아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진실을 외면하는 삶은 도망치는 삶이고, 선택 없는 삶이고, 책임을 면제받으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모든 사람이 네오가 될 수는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눈앞에 이득과 편함이 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옳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말이다.

 

철학적인 옳음을 도덕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면 조금 이해가 되는 것도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도덕을 지키기 위해 조금 더 불편하고 조금 더 신경 쓰고 살아야 하지만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어 지키려고 노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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